지난해 12월 발생했던 인천 11세 아동의 맨발 탈출 사건 100일을 맞아 진행된 이번 행사에 참여한 시민사회단체들은 올 들어 아동학대로 사망한 채 발견된 아동 8명에 대한 추모와 묵념 행사를 가진 뒤 아동학대 예방 및 근절을 위한 시민사회의 제언이 담긴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이후에는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아동학대 없는 대한민국을 촉구하는 서명활동을 펼쳤다.
시민사회단체들은 공동성명서에서 “정부는 2년 전 아동학대예방종합대책을 발표하고도 손 놓고 있다가 11세 아동이 탈출한 뒤에야 다시 비슷한 대책을 쏟아놓으면서,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최근의 아동학대사망사건들 이후 정부 각 부처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대응 방안을 발표하고 있지만, 체계가 제각각인데다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영유아, 의무교육 대상자가 아닌 고등학생은 학대예방대상에서 누락되는 등 여전히 사각지대가 많다고 지적했다.
단체들은 “아동보호체계 전체와 관련한 기획, 조정 업무를 맡고 인력과 자원을 갖춘 상설 컨트롤 타워가 중앙 및 지방 정부에 설립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와 함께 △아동보호 위한 국가예산의 증액 및 안정적인 편성 △학대피해아동을 위한 쉼터와 치료 지원 확대 △아동보호전문기관 인력 확충 및 차등적 대응 시스템 마련 △경미한 아동학대에 대한 초기 개입 강화 △학대 예방을 위한 지역사회의 협업 강화 및 위기가정 지원 △체벌과 방임 전면금지 등을 제안하고, 이를 이행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공동성명에는 아동단체협의회를 비롯한 아동단체들과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등 변호사 단체, 한국아동복지학회 등 학술단체들이 참여했다.
[성명서 전문]
아동학대, 사후약방문 말고 근본대책 세워라
–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시민사회 공동성명 –
짧은 생애를 공포와 고통 속에서 살다 간 아이들의 비극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아동학대의 실상이 잇따라 드러나면서 온 사회가 충격에 휩싸였다. 올해 들어서만 학대로 목숨을 잃은 아이를 뒤늦게 발견하거나 새로 발견한 사망사건이 무려 8건에 달한다.
영영 묻혀버릴 뻔한 아동학대사망사건들이 밝혀지도록 한 장본인은 부끄럽게도 정부도, 어른도 아니고 지난해 12월 12일 아버지의 학대를 피해 가스배관을 타고 탈출한 11세 소녀다. 오늘 (3월 20일)은 소녀가 목숨을 걸고 탈출한지 100일째가 되는 날이다. 100일간 우리는 아이들이 학대로 숨져갈 때 주변의 어른들 누구도 그들을 제대로 돕지 못했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확인했다. 숨진 아이들에 대한 애도와 함께 통렬한 자괴감을 느끼며,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성인들에게, 우리 사회와 정부에게 묻는다. 이것이 정상적인 사회인가?
연일 뉴스를 장식하는 극단적 사건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아동학대는 은폐돼 있다. 아동학대는 대부분 아이들이 잘 알고 의존하는 부모, 보호자에 의해 저질러진다는 점에서 가장 잔혹한 폭력 중 하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집안에 갇혀 공포에 떠는 아이들이 있다. 현관 그 너머까지, 닫힌 방문 안까지 공적 개입이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공적 개입의 책임을 지닌 정부는 과연 어땠는가? 한국은 유엔아동권리위원회로부터 아동 폭력 해결을 위한 국가전략 개발 등의 권고를 거듭 받으면서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 학령기 미취학 아동 가정방문 조사, 건강검진과 예방접종 미실시 아동 가정방문 조사, 아동학대전담경찰관 설치 등 최근 쏟아진 대책들은 대부분 2014년 2월 세상을 들썩인 아동학대사망사건 이후 발표한 정부의 종합대책 에 이미 다 포함됐던 것들이다. 2014년 9월에는 부총리가, 2015년 5월에는 대통령이 아동학대형 의무교육 이탈을 막겠노라고 공언했다. 그런 일련의 약속들을 지키려고 정부가 조금만 노력했더라면, 몇몇 죽음은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여론이 잠잠해지자 2년 가까이 손 놓고 있다가 11세 소녀가 사력을 다해 탈출한 뒤에야 다시 비슷한 대책을 쏟아놓으면서, 정부의 그 어떤 책임자도 사과하지 않았다. 숨진 아이들 앞에서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이제 더 이상 일회성, 면피성 대책은 안 된다. 아동학대를 막을 공적 개입을 강화하고 안정적이고 촘촘한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실행하는 것만이 비명 속에 숨진 아이들의 죽음 앞에서 우리가 최소한의 책임을 지는 길이 될 것이다. 우리는 정부가 아동학대 예방을 위한 근본적 해결책을 마련하고, 각 정당 또한 총선 공약에 아동학대 예방 대책을 포함하고 이행하기를 촉구하며 다음과 같은 10개 항을 제안한다.
*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시민사회 10대 제안
1. 아동보호를 책임질 중앙 및 지방정부의 상설 컨트롤 타워를 구축해야 한다.
2. 아동보호를 위한 국가예산을 증액하고 안정적으로 편성해야 한다.
3. 아동학대 정보의 공유를 위해 국가아동학대정보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4. 학대피해아동을 위한 쉼터와 치료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5. 아동보호전문기관과 인력을 확충하고 차등적 대응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6. 법 집행자의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개선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7. 특례법이 적용되지 않는 경미한 아동학대에 대한 초기 개입을 강화해야 한다.
8. 학대 예방을 위한 지역사회의 협업을 강화하고 위기가정을 지원해야 한다.
9. 아동학대에 관한 세부지침을 마련하여 체벌과 방임을 전면금지하고 부모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10. 신고의무자의 직종별 교육 강화, 사업장별 보호팀 구성을 통해 신고율을 높이고 전국적
학대예방 홍보를 실시해야 한다.
아동학대는 불가피하지 않다. 막을 수 있고, 막아야 한다. 어떤 형태든 아동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은 그 아이에게 폭력이 수용 가능하다고 가르치는 것이며 폭력의 순환을 영속시킨다. 학대는 아이들에게서 잠재력을 실현할 기회를 빼앗고, 사회로부터 발전의 가능성을 빼앗아간다. 오늘 아동학대를 예방해야 더 이상 폭력이 통하지 않는 미래를 만들 수 있다. 학대 예방을 포함하여 가장 취약한 처지에 내몰린 아이들 모두를 보호하는 공적 체계가 제대로 설 때까지 우리는 정부의 의지와 정책 실행 과정을 계속 감시할 것이다.
2016. 3. 20
(42개 단체, 가나다 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국제아동인권센터, 굿네이버스, 기아대책, 대한사회복지회, 동방사회복지회, 무궁화복지월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아동인권위원회, 부스러기사랑나눔회,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서울YMCA, 세이브더칠드런, 세이프키즈코리아, 아이코리아, 엔젤스헤이븐, 월드비전,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종이문화재단,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탁틴내일, 프렌드아시아, 한국YMCA전국연맹,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한국방정환재단,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 한국사회복지학회, 한국사회복지사협회, 한국사회정보연구원, 한국수양부모협회, 한국아동권리학회, 한국아동단체협의회, 한국아동복지학회, 한국아동복지협회, 한국아동청소년그룹홈협의회,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한국여성사회복지사회, 한국장난감도서관협회,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 한국종이접기협회, 홀트아동복지회